▷ 책소개 서구의 사회사상 흐름에서 주요한 축을 이루는 것이 맑스주의와 프로이트주의이다. 이 양자의 결합은 20세기의 중요한 화두였다. 이 양자는 현실제도 속에서 국가와 가족이라는 두 받침대로 이 사회를 지탱해 왔다. 계급해방을 위해 계급지배장치인 국가를 사멸시키려던 맑스주의가 국가를 강화해 왔고, 욕망해방을 통해 인간해방을 지향했던 프로이트주의는 가족삼각형으로 사람들의 욕망을 옥죄어 왔다.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 1897~1957)는 이러한 흐름에 대해 반기를 들고 나섰다. 그는 일찍이 맑스(주의)와 프로이트(주의)를 결합하려고 시도했다. 물론 현존 사회를 강화하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해체하고 재구성하려는 목적에서였다. 그는 기계론적인 맑스주의와 문화론적인 프로이트주의를 공격하고 계급해방과 욕망해방을 향해 전진한다. 특히 라이히는 계급해방담론에 의해 억압된 욕망해방담론을 개방한다. 그의 욕망해방담론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이 오르가즘이론인데 훗날 이 이론은 우주에너지를 포괄하는 오르곤이론(오르고노미)으로 발전한다.
이 책은 라이히 사상의 핵심을 아우르는 『성격분석』의 독일어본과 영어본을 윤수종(전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완역한 것이다. 제1권은 1933년 자비로 직접 출판한 「성격분석 - 학생 및 실무 분석가를 위한 기법 및 기초」인데, 그의 성격분석기법과 성격형성론이 담겨 있다. 제2권은 1934년부터 1949년에 걸쳐 쓴 글들을 묶은 것이다. 1권과 연속되는 내용을 지니고 있지만 오르곤 생체신체학으로 넘어가는 논의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라이히의 다양한 연구를 개괄하는 「오르가즘과 정신건강」이란 해설을 제1권의 끝에 소개했다.
왜 지금 ‘라이히’를 읽어야 하는가?
현실에서는 ‘MBTI’에 입각한 성격분류놀이가 판을 치고 있다. 생각은 분류된 항목에 고착되어 성격에 대한 탐구는 정지된다. 성격 분류가 오히려 억압의 기제로 작용하는 것이다. “나는 ○○야”라고 무슨 소속사 밝히듯이 자신의 성격소속을 밝히며 주체성을 결박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은 오르가즘이론에 입각한 성격분석을 통해 주체성을 이해하려고 한다. 성격파악과 저항분석을 중시하는 「성격분석」 1권은 다양한 사례분석을 통해 성격분석기법의 원리가 작동하는 과정을 탐색하며, 이러한 과정에서 인간 주체의 삶과 충동만족기제를 확인하고 쾌락불쾌원칙에 입각한 오르가즘 정식을 삶의 원리로서 제시한다. 인간의 생명 기능의 핵심이 뭔가, 삶의 핵심이라는 게 뭔가, 삶을 긍정한다는 게 뭔가를 생각하면서, 인간이 지닌 충동을 긍정해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한다.
‘프로이트’를 넘어 ‘쾌락’ 긍정으로
이론적으로 이 책의 꽃은 피학성격에 대한 분석이다. 프로이트의 반동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프로이트가 쾌락불쾌원칙을 부정하는 관능적 피학성향이나 죽음충동을 끌어들이는 것에 반대하여, 피학성향이나 죽음충동은 일차적 성향이나 충동이 아니라 일차적인 자연스러운 충동이 사회의 부정에 마주하여 나타난 이차적 성향이나 충동이라고 주장한다. 이로써 프로이트가 이드를 반사회적인 충동이라고 하며 억압하자는 문명론으로 나아가고 정신과정을 삶충동과 죽음충동의 변증법적 놀이로 설명하려는 것에 대해 형이상학을 끌어들여 사변을 시작한다고 강력히 비판한다. 그렇게 하여 라이히는 리비도와 삶충동을 긍정하고 오르가즘만족을 추구해 가는 건강한 삶을 강조한다. 쾌락불쾌원칙은 더욱 굳건해 진다. 쾌락주의를 이보다 더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을까? 스피노자에게서는 쾌락주의가 억제되어 있다면, 라이히에게서는 만개한다.
정신분석에서 오르곤 생체신체학으로
제1권 발간 이후 ‘성격’은 전형적인 생체신체 행동을 나타내는 용어가 된다. ‘감정’은 점점 더 유기체 오르곤에너지, 만질 수 있는 생체[바이오]에너지의 표현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래서 라이히는 ‘오르곤치료법’이라고 불리는 방법으로 생체에너지를 다루는 오르곤 생체신체학으로 넘어간다.
2권은 생체신체학을 다루면서 감정전염병과 선악도덕론에 대한 분석으로 나아간다. 1권의 이드(충동)와 사회(외부세계)의 대립구도가 오르곤과 우주에너지장의 구도로 변하는데, 인간중심 관점에서 우주에너지 관점으로 비상하는 것이다. 이제 라이히가 제시하는 우리의 과제는 인간동물이 자연을 자신 안에 받아들이고, 자연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을 멈추고, 지금 자신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것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자연 존재인 인간의 ‘오르가즘능력’
오르가즘능력이란 어떤 억제도 없이 생물학적인 에너지 흐름에 몰입할 수 있는 능력, 즉 본능적인 쾌락적 신체경련을 통해 막혀 있던 성흥분(충동)을 완전히 방출할 수 있는 능력이다. 오르가즘능력은 인간이 모든 생물과 똑같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생물학적 기능이다. 정신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정신병환자가 정신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오르가즘능력을 갖추어 나가야 한다.
인간의 충동구조는 생물학적인 자연스러운(일차적) 충동, 그것이 사회에서 억압되어서 왜곡되어 나타난 반사회적인(이차적인) 충동, 그리고 표면 충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자연스러운 성만족능력의 상실, 즉 자연스러운 성기만족 기제의 억압은 한결같이 이차적 충동 특히 가학 피학충동의 발달로 이어진다. 억압장치들을 해체하여 이차적 충동을 풀어주고 자연스러운 충동이 펼쳐져 나가게 하는 사회적 과정으로서 성혁명이 필요하다.
어린이, 청소년, 성인의 자연스러운 사랑생활의 회복만이 성격신경증과 더불어 다양한 형식의 감정전염병을 세상에서 근절할 수 있다. 우리의 위대한 임무는 인간동물이 자연을 자신 안에 받아들이고, 자연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을 멈추고, 지금 자신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것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빌헬름 라이히의 삶과 사상
빌헬름 라이히는 오스트리아 제국에 속한 갈리시아의 도브르치니카에서 1897년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태인이며 농부로서 땅을 많이 빌려 크게 농사를 지었다. 독일문화의 변경지대로 이디시어[유대인이 사용하는 독일어를 바탕으로 하고 히브리어를 덧붙인 언어]를 사용하던 시골에서 아버지는 라이히에게 독일어를 사용하도록 했고 고용 농민들에게는 엄하게 대했다. 라이히에게 그들의 자녀와 놀지 못하도록 했을 정도였다. 라이히는 아버지의 엄격함을 싫어했지만 고용농민들의 복종 태도에도 깊은 인상을 받았다. 어머니를 좋아했지만 어머니와 가정교사 사이의 사랑을 아버지에게 얘기하여 어머니를 자살하게 만든 소년 라이히. 그러나 그는 죄의식에 사로잡히기보다는 인간의 애정관계를 더욱 깊이 파고들고 인간관계를 파헤쳐 보려고 했다.
라이히의 삶과 사상의 변화를 대체로 세 단계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단계는 1918년 빈 대학에 입학하여 프로이트의 직접 사사를 받으면서 이른바 ‘정신분석 2세대’를 형성하여 독창적 정신분석 기법을 실험하던 시기다. 둘째는 1928년부터 1933년까지 맑스주의 정치의 일환으로 성-정치(Sex-Pol) 운동을 정력적으로 전개하던 시기로 그의 생애에서 가장 역동적인 시기이다. 마지막으로 외국으로 전전하면서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39년 미국에 정착하여 ‘오르곤에너지’를 발견하고 그에 관한 과학적 실험에 집중하던 시기다.
라이히가 제기하는 오르가즘이론은 성을 긍정하고 삶을 긍정하는 신체유물론이다. 정신과 신체의 이원론을 보기좋게 넘어서는 라이히의 정신과 신체의 동일성에 대한 주장은 그동안 소홀히 해 왔던 주체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한다.
스피노자가 철학자들에게 ‘신체란 무엇인가?’라고 묻고 코나투스에 입각해 정서를 제기했다면, 라이히는 신체가 지닌 충동과 충동을 부정하는 사회의 대립 속에서 이루어지는 주체성 형성과정을 탐구한다. 오르가즘능력에 초점을 맞추어 정서가 감정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파악하면서 자율적인 주체형성을 시도한다.
▷ 목차 옮긴이 메모06
서문07
1부 기법
1장 정신분석기법의 몇 가지 문제23
2장 분석치료이론의 경제적 관점30
3장 해석기법과 저항분석기법에 대하여41
4장 성격분석기법61
5장 성격분석의 사용여부와 위험 138
6장 전이처리에 대하여143
2부 성격형성론
1장 성격형성을 통한 어린 시절 성갈등의 극복167
2장 성기성격과 신경증성격(성격의 성경제적 기능)183
3장 어린 시절 공포증과 성격형성207
4장 몇 가지 특기할 만한 성격형식217
5장 피학성격237
6장 욕구와 외부세계 사이의 원 갈등에 대한 몇 가지 언급281
용어 설명294
해설 오르가즘과 정신건강322
▷ 저자소개 빌헬름 라이히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 1897~1957)는 1920년대 후반 이후 성격분석을 제시하며 정신분석에서 프로이트와 다른 길을 개척하였다. 1930년대 들어 맑스주의와 프로이트주의를 결합하려고 하였으며, 성혁명을 외치고 파시즘 분석을 하였다. 이 과정에서 오르가즘이론에 입각하여 신체와 정신의 건강을 강조하는 신체유물론을 펼쳤으며, 1939년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에는 오르곤에너지 연구에 몰두하였다. 국내에 『파시즘의 대중심리』, 『성혁명』, 『성정 『오르가즘의 기능』, 『들어라 작은 사람들아』, 『그리스도의 살해』, 『프로이트와의 대화』 등 다수의 책이 번역 소개되었다.